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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장관 수명 1년…이벤트는 차관에 맡기고 고등과학원에 올인
내가 1990년 처음 과학기술처 장관을 맡으면서 배운 깨달음의 하나가 ‘장관 수명은 평균 1년’이라는 것이다. 인사·정책 결정과 실무 집행을 속전속결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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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몸 둘 곳 없는 이들 위한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으로 또다른 삶
1996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맡아 핵무기 개발을 종식하고 더욱 안전한 원자력으로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과학자의 꿈은 아쉽게도 접어야 했지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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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 첫 위성 ‘우리별’ 아버지 최순달, 과학재단 바통 넘기다
아주대 에너지학과 특임 석좌교수로 일하던 1987년, 한국과학재단의 최순달(31~2014년) 이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최 이사장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스탠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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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유학 따라온 여친과 23세에 결혼 … 해너 총장이 장학금 선물
1960년 3월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 도착해 자격시험을 치른 뒤 시작한 물리학과 박사과정은 63년 8월에 끝났다. 2년여 동안 과정을 공부한 뒤 그해 3월에 시작한 학위 논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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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김법린 원장, 내가 미국 유학길 오르자 ‘두뇌유출’ 우려
중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들이 중일전쟁 시기 공부했던 전시 피난대학인 서남연합대 정문. [중앙포토] 김법린 원자력원장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내게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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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철학자 출신 김법린, 묻고 확인하는 리더십으로 이공계 인재 이끌어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은 이미 3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분으로 학문뿐 아니라 인격도 훌륭했다.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한 항일 독립투사 출신이기도 하다. 20대에 그런 분을 지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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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대학, 책 20권 나눠주고 “한 달 뒤 시험” … 낙제 두려워 잠 설쳐
정근모 박사가 1960년 유학간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그해 입학식에서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가운데)이 축사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존 해너 총장이다. 트루먼은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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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경쟁팀장이 일본인 … 핵융합 연구 한·일전 막오르다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1901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는 무선 통신 시연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프린스턴대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는 동안 과학기술과 산업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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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터만 박사, 직접 한국과학원 설립 도와
1970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당정협의회에서 남덕우 재무부 장관의 절묘한 해법 제시로 통과된 한국과학원(KAIS, 현 KAIST) 설립안은 그 뒤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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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美박사 들고온 우라늄 상자···이승만의 눈빛이 반짝였다
1959년 7월 14일 한국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기공식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첫 삽을 뜨고 뒤에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이 서있다. [사진 정근모 박사] 내 사무실의 자리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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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충격…안전장치 개발로 과학적 대응
아들 진후의 치료를 위해 미국과학재단으로 자리를 옮긴 1979년과 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한 80년은 개인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세계 에너지계도 어려움에 부딪혔다. 제2차 석유파동을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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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과학원 초안 담당자마다 교통사고·심장마비 … 결국 임무는 내게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KAIST)의 창의학습관 1층에 있는 터만홀의 안내 동판.1970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지원 타당서 조사단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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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력난 도움 준 시슬러, 이승만에게 “원전 만들 인재 50명 유학보내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발생한 5·14 단전 사태는 내가 오랫동안 관여해온 전력 분야에선 깊은 ‘트라우마’였다. 미국의 전력선과 국내 전력설비 확충으로 겨우 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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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유학 직전 중국인들이 노벨물리학상 …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삶의 본보기' 김법린 원장의 충고 나는 대학 2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이 때문에 20대 초반에는 가장 고마운 스승으로 모셨던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과 신태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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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칼국수 오찬에 불러 장관 제의…고사했지만 임명 강행
━ 남기고 싶은 이야기 1990년 12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짧은 기간 정부에 봉사하고 대학교수로 돌아오자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외 초청 강연과 학회 참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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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수술 받은 아들 “왜 천사 세 분이 와 계시죠”…두달 뒤 먼저 하늘로
2000년 여름 호서대 설립자이자 총장인 강석규 장로가 찾아왔다. “기독교 대학을 맡아 후진 양성에 진력하는 게 어떻겠소?” 서울 서초구와 충남 아산·천안·당진에 위치한 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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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아버지·원폭 개발 교수, 한국 와서 했던건···
1971년 2월 16일 한국 과학원(KAIS) 개교식 모습. [국가기록원]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한국과학원(KAIS) 설립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해 파견한 조사단의 프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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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과기처 관료들 밤낮없이 뛰었다 … 미국, 한국과학원에 원조 600만 달러
1970년 8월 과학기술처 고위 공직자들과 한국과학원 설립 타당성 검토를 위해 파견된 미국국제개발처(USAID) 조사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뒷줄 왼쪽부터 과기처의 조경목 진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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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아들에게 내 신장 줬지만…설상가상 C형 간염까지 전염시켜
아들 진후의 신장병 치료를 위해선 홍릉 한국과학원(KAIS)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신장이식 전문병원이 있는 워싱턴·버지니아 지역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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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수폭의 아버지 텔러와 싸운 이유
1947~66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을 맡으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학술 세미나를 열던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67년) 박사는 내게 은인이다. ‘과학자 윤리’와 ‘핵의 평화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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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중국 누르고 따낸 원자력 국제회의…미국과 막후 협상이 결정타
1983년 미얀마에서 벌어진 아웅산 묘지 테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박세직(1933~2009년) 당시 한국전력 수석 부사장과 함께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원자력학회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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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재산실 뉴욕공대 … 웨버 교수, 독일군 U보트 잡는 탐지기 개발
1967년 9월 전기 물리학과 부교수로 부임한 뉴욕 공대(Polytechnic Institute of New York)는 뉴욕시 브루클린과 롱아일랜드 파밍데일에 캠퍼스를 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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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김재익까지 도와준 첫 연구소 … 문제는 돈이었다
미국 코넬대에서 과학기술사회(STS) 연구를 마치고 귀국한 나는 한국과학원(KAIS)의 첫 연구소인 STS 연구실을 열고 실장을 맡아 연구 활동에 들어갔다. 과학원 초창기 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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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자 5명이 노벨상, 하버드대 전설 브룩스 교수 만나다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이 1966년 이름을 바꾼 하버드 케네디 스쿨. 세계적 수준의 공고 정책 대학원이다. 정근모 박사는 MIT 교수로 핵융합을 연구하면서 이 대학원의 과학기술 정책